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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올림픽 양궁 영웅 박성수 감독 별세…향년 55세

 

 

1988년 서울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이자 최근까지 국가대표 양궁 감독으로 활약했던 박성수 감독이 2025년 8월 27일 별세했다. 향년 55세. 충북 청주시 숙소에서 개최 중이던 '올림픽제패기념 제42회 회장기 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참석 중 갑작스럽게 숨진 채 발견된 박 감독의 사망 소식은 한국 스포츠계를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박성수 감독, 누구였나

박성수 감독은 한국 양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무대에 ‘K-아처리’의 위상을 높였다. 당시는 한국 양궁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던 시기로, 박 감독의 활약은 그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선수 생활 이후에도 박 감독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한 그는 수년간 청소년 선수와 국가대표를 지도하며 또 다른 황금기를 열었다. 특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남녀 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수확해, ‘선수·감독 모두 금메달리스트’라는 영예를 안았다.

향년 55세....갑작스러운 별세

2025년 8월 27일, 박성수 감독은 충북 청주시의 한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인천 계양구청 소속 양궁팀 감독으로 회장기 양궁대회에 참가 중이었던 그는 경기 전날까지도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기상하지 않아 숙소 동료가 방문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으나, 생전에 심장 관련 증상을 호소했다는 주변의 증언이 전해지고 있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밝혀 자연사로 초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젊고 왕성히 활동하던 박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성수 감독이 남긴 유산

박성수 감독은 단순한 스포츠인이 아니었다. 그는 양궁을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고, 또 다른 스타들을 지도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가 지도한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으며, 그의 지휘 아래 한국 양궁은 더욱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종목으로 거듭났다.

선수 시절에도, 지도자 시절에도 그는 항상 노력과 집중력의 표본이었다. “한 발에 혼을 실어라”는 그의 지론은 수많은 선수들에게 전해지며 양궁계를 관통하는 철학이 되었다. 그의 유산은 수치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스포츠정신 그 자체로 남아 있다.

양궁계의 큰 별을 기리며

박 감독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한양궁협회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비롯한 양궁계 인사들이 잇따라 애도를 표했다.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 글이 이어졌으며,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한국 양궁의 영웅’에 대한 추억과 존경이 이어졌다.

특히 박성수 감독은 단순한 성과 중심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선수들의 멘탈, 컨디션, 장비 환경까지 세심히 챙기는 지도자로 유명했다.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부드럽지만 엄격한 멘토’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다. 이번 별세로 그를 따르던 후배들과 동료들은 물론, 전체 스포츠계가 하나의 큰 기둥을 잃은 느낌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박성수 감독의 삶은 화려한 메달보다도, 그것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의 가치가 더 빛나는 여정이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한 전무후무한 인물. 그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수들에게 도전의 영감이 되고 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양궁이라는 스포츠를 넘어, 한국인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